대만 반도체 기업 TSMC 미디어텍 UMC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컴퓨팅,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고성능 컴퓨팅(HPC) 등 첨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라는 표현을 넘어 국가 안보와 미래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HBM(고대역폭 메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칩렛(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기술)은 반도체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이들 기술이 현재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왜 중요한지, 그리고 산업적·정책적 파급 효과가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살펴봅니다.
HBM: 고대역폭 메모리의 비약적 진화
HBM(High Bandwidth Memory)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기존 DDR 메모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AI 연산 및 고성능 그래픽 환경에 최적화된 새로운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HBM은 다수의 DRAM 칩을 수직으로 적층한 뒤, 실리콘 관통전극(TSV)을 통해 각 층을 연결함으로써 기존 메모리 대비 훨씬 높은 데이터 전송 속도와 에너지 효율을 제공합니다.
AI 모델이 방대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HBM은 GPU 및 AI 프로세서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특히 엔비디아는 자사의 AI용 GPU인 A100, H100 등에서 HBM을 기본 탑재하고 있으며, 2025년부터는 HBM4에 대한 수요도 예고되어 있습니다.
한국 기업인 SK하이닉스는 세계 최초로 HBM3E 양산을 시작했고, 삼성전자 또한 HBM3P 양산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히 HBM은 AI 반도체, 고속 서버, 데이터센터, 자율주행차량까지 적용 분야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으며, 미국, 유럽 등 각국은 자국 내 HBM 생산을 위한 전략 투자도 준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HBM은 단순한 메모리 기술을 넘어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기술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TSV의 신뢰성, 열 분산 설계, 패키지 내 신호 간섭 문제 등 다양한 공정 이슈에 대한 기술 혁신이 병행되어야 하는 복합 기술입니다. 결국 HBM을 확보한 기업은 향후 AI·HPC 경쟁에서 기술 우위를 선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파운드리: 반도체 생산의 핵심 인프라
파운드리(Foundry)란 반도체 설계를 전담하지 않고 오로지 생산에만 집중하는 전문 위탁생산 사업을 말합니다. 반도체 시장은 과거 ‘IDM(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설계와 제조의 분업이 확산되면서 팹리스(fabless)와 파운드리 체제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습니다.
현재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대만의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미국의 인텔도 자체 IDM 전략과 파운드리 역량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습니다. TSMC는 애플, 퀄컴, 엔비디아, AMD 등 글로벌 IT 기업들의 칩 생산을 맡고 있으며, 고정밀 공정력과 안정적인 수율로 업계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GAA(Gate-All-Around) 기반의 3나노 공정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며 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파운드리 산업은 단순한 생산 설비를 넘어 공정 미세화, 열 관리, 설계 최적화, 패키징 통합까지 다양한 기술 요소가 필요하며, 고객사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 또한 중요합니다. 또한 공급망 안정성, 생산 캐파(capacity), 품질 보증, 보안성 등도 파운드리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입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자국 내 생산 확대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파운드리 유치에 투자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대규모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 중입니다. 파운드리는 기술 경쟁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패권과 직결되는 분야로, 향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지속적인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
칩렛: 차세대 패키징 기술의 핵심
칩렛(Chiplet)은 기존의 단일 반도체 칩 설계 방식과 달리, 다양한 기능을 가진 소형 칩들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집적하여 시스템처럼 동작하게 하는 기술입니다. 이 방식은 설계 유연성을 극대화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며, 공정별 특화 설계를 통해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어 차세대 반도체 설계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모든 기능(연산, 그래픽, 메모리 인터페이스 등)을 하나의 거대한 다이(die)에 집적했으나, 칩이 커질수록 수율이 떨어지고 제조 비용이 급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칩렛은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각 기능을 모듈화하고, 필요에 따라 교체 또는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구조를 제공합니다.
AMD는 이미 자사 라이젠(Ryzen) 및 에픽(EPYC) 시리즈 CPU에 칩렛 구조를 적극 도입해 고성능 및 확장성을 동시에 달성했으며, 인텔도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 및 Foveros 기술을 활용해 칩렛 구조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삼성전자도 I-Cube, X-Cube 등 고밀도 인터포저 기반 칩렛 패키징 기술을 개발 중이며, 향후 AI 및 HPC 시장 진출을 위한 핵심 전략 기술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칩렛 기술은 단지 소형 칩을 모은다는 개념을 넘어, 고대역폭 인터커넥트 기술, 열 분산 설계, 고밀도 패키징 기술, 전력관리 아키텍처 등과의 융합이 필요합니다. 또한 표준화된 칩렛 생태계(OSAT, 설계 툴, 테스트 플랫폼 등)가 병행되어야 실제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는 ‘칩렛 연합’ 형성도 고려 중이며, 이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간 통합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HBM, 파운드리, 칩렛은 각각 메모리, 생산, 설계 및 패키징 분야에서 반도체 기술의 근본적인 진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HBM은 고속 연산을 위한 필수 메모리 솔루션으로 자리잡았고, 파운드리는 기술력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산업 안보의 핵심 인프라로 떠올랐으며, 칩렛은 반도체 설계의 유연성과 성능 향상을 동시에 실현하는 혁신적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반도체 기술은 단순한 나노미터 경쟁을 넘어서 ‘어떻게 조합하고, 어떻게 연결하고, 어떻게 관리하는가’의 종합적 접근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기업은 기술 R&D 투자와 생태계 확장을 병행해야 하며, 정부와 정책 입안자도 선제적 제도 마련과 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개인, 기업, 국가가 반도체 기술 트렌드를 깊이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입니다. 10년 후 반도체 강국의 자리를 선점할 주체는 오늘 이 기술 변화에 준비하는 곳일 것입니다.